타임캡슐 (강문호 원로목사)
죽는 연습
고후 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후 2;16)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말하겠니? 부부가 배를 타고 여행중에 배가 파선하게 되었습니다. 구명정에는 한 사람밖에 탈 수 없었습니다. 둘이 타면 둘 다 죽습니다. 이 때 남편이 아내를 남겨놓고 구명정으로 올라 육지로 배를 젖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내는 침몰하는 배위에서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남편을 향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기하던 교수가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아내가 무엇이라고 소리질렀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내가 눈이 삐었지. 저런 것을 믿고 결혼하였나?”
학생들은 줄줄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저승에 가서 귀신이 되어 보자.”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할 때 한 여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교수님! 우리 아이 잘 부탁해! 이렇게 말하고 죽어갔을 것같아요.” 깜짝 놀란 교수가 물었습니다.
“너 이야기 들어 보았나요?” “아니요. 우리 어머니가 돌아 가실 때 내 앞에서 아버지에게 우리 아이 잘 부탁해! 그리고 돌아 가셨어요.” 교수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랬구나! 뒷 이야기를 합니다. 남편은 돌아 와서 딸을 잘 길렀습니다. 그가 죽었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던 딸이 아버지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그 때 나도 당신을 붙들고 같이 죽고 싶었었지요. 미안해! 여보!. 우리 둘 다 죽으면 우리 딸을 기를 사람이 없어지지. 당신은 그 때 중병에 걸려 몇 달 못 산다는 진단을 받고 마지막 여행중이었지. 딸 때문에 홀로 구명정에 오르던 내 심정은 찢어지는 것같았지. 그 때 당신이 우리 아이 부탁해요! 라고 소리지를 때는 미치는 것같았지.”
영성가들은 죽음을 친밀하게 생각했습니다.
동방정교회의 영성의 고전인 필로칼리아에 보면 영성가들은 죽음을 아담의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서방교회를 대표하는 영성가인 성 프란시스코는 자신의 태양찬가에서 죽음을 자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죽음을 아담의 딸이라고 한 이유는 아담의 범죄를 통해 죽음이 인간에게 주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자매라고 한 이유는 창조주 앞에 다른 피조물들과 함께 서 있는 피조물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삶의 가장 엄숙한 스승이요 사랑스러운 동반자로 여겼습니다.
특별히 동방정교회의 영성가들은 자신의 죽음의 순간을 묵상함을 통해 마음의 청결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하곤 했는데 그것은 현실과 죽음 사이에 놓여 있는 모든 것들을 홀연히 초월하게 했습니다.
동방정교회에서 죽음에 대한 묵상은 무정념(無情念)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마음의 청결에 이르는 중요한 영성훈련입니다. 죽음이 그런 역할을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의 불가피성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창조주의 법칙입니다.
다른 하나는 죽음의 시간에 대한 불가지성입니다.
누구도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를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피조물의 한계입니다. 그러하기에 죽음은 삶의 가장 엄숙한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우리를 궁극적 삶의 의미에 충실하도록 도와줍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90:12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죽음을 삶의 동반자로 여길 때 우리는 “죽음 없는 죽음(the death without a death)”을 맞이할 것입니다.
죽는데 왜 죽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죽음이 없다는 의미는 두려움, 후회, 사별의 고통 같은 죽음(a death)이 경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흥미롭게도 영성가들은 종말론에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죽음이 올 것을 준비하며 살았기에 죽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맞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성가들은 죽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의 하나라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죽는 연습을 하며 살다가 능숙하게 죽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것이 왔구나!”
나는 수도학을 공부하던 중 거룩하게 살아간 수도사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수도사들의 삶은 복음의 최고 질을 살았던 이들입니다.
브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로 알려진 니콜라스 헤르만 “30년 전쟁”에 참전하였다가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다리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55세에 갈멜 수도원에 들어 갔습니다. 수도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수도의 첫 걸음은 헌신입니다. 그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잡일을 하는 심부름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감사하며 일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로 하여금 저런 천사들을 받들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접시를 닦으면서도 감사하며 열심히 봉사하였습니다. 2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모든 수도사들이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원장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수도원장을 뽑을 때 수도사도 아니었던 그가 표를 제일 많이 받았습니다. 일약 수도원장이 되었습니다.
죽는 연습을 하여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후 2;16)
연습은 실제를 쉽게 만듭니다. 훈련에 땀을 흘린 병사는 전쟁에 피를 흘리지 않습니다.
김 연아가 공중으로 솟아 올라 세 바퀴를 돕니다. 한 바퀴 연습에 10억이 들어 갔습니다. 한 바퀴 도는 연습을 하는 데 900번 정도 넘어져야 완숙되는 난이도입니다. 그렇게 연습하고 나면 실전에 나가서 묘기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누구나 지옥 아니면 천국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편지쓸 때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고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후 2;16)
목사는 종종 성도들이 임종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지옥가는 사람과 천국가는 사람의 모습이 확실히 다릅니다. 지옥가는 사람은 가기 싫어서 발버둥칩니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모어가 생겼습니다.
아이젠아워는 죽을 때 무엇이라고 말하며 죽었을 가?
“아! 아젠 아워(시간)이 다 되었구나!”
일본 수상 다나까는 무엇이라고 말하며 죽었을 가?
“다 나가!”
맥아더는 무엇이라고 말하며 죽었을 가?
“맥아! 더 뛰어 다오!”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천국으로 가는 사람들은 천국가는 냄새가 납니다.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isostom)은 왕과 수도사를 비교하였습니다.
“참 왕은 세상 왕이 아니라 수도사다.
왕은 세상을 지배하고, 수도사는 영을 지배한다.
왕은 적과 싸우고, 수도사는 사탄과 싸운다.
왕은 동지에게 금을 주고, 수도사는 동료에게 은혜를 준다.
왕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수도사는 죽음을 환영한다.
둘 다 자기 일에 충성하고 나면 상급은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천국가게 하는 연습도 하여야 합니다. 어린 딸이 불치병으로 병상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엄마! 나 죽기 싫어. 무서워!”
어머니는 죽음의 공포를 덜어 주려고 천국을 설명합니다.
“딸아! 너만 죽는 것 아니야. 이 세상 다 죽어. 너 먼저 천국가는 것뿐이야. 우리도 다 갈 거야. 먼저 가서 기다려. 그 곳에는 예수님이 계셔. 너 맞아 줄 거야. 거기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걱정하지 말아.”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얼마 후 엄마가 아프다고 딸 옆에 누워 신음을 합니다. 그리고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딸아! 엄마가 먼저 죽을 것같다.”
“엄마! 죽지 마!”
이런 대화가 며칠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죽으며 말했습니다.
“딸아! 엄마 먼저 천국에 가서 너 기다릴 께.”
그리고 죽었습니다. 딸이 어머니 시신이 나가는 것을 보고 울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엄마! 엄마가 먼저 간 천국에 빨리 가고 싶어.” 그리고 그는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딸은 천국간 엄마가 보고 싶어 빨리 엄마를 보고 싶다고 천국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딸이 죽었습니다. 죽었던 어머니가 옆에서 장례를 치루어 주었습니다. 딸을 천국으로 보내는 연습을 시킨 어머니 연극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그렇기에 죽는 연습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는 죽을 사람이 영원히 이 땅에서 살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네이버로 들어가서 “죽는 연습”이라고 넣어 보았더니 수 백가지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죽는 연습을 하며 사는 사람은 결코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그러면 죽는 연습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가요?
너무 죽음의 공포에 얽혀 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삶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1. 해골을 옆에 놓고 사는 사람
역사적으로 보면 해골을 옆에 놓고 늘 죽는 연습을 하며 산 사람 있습니다.
예루살렘옆에 베들레헴이 있습니다. 그 곳에 수도원이 있습니다. 수도원에 동굴이 있고 그 안에 제롬이 성경을 번역하며 연구한 방이 있습니다. 제롬의 책상위에는 늘 해골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가이드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두 가지였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나도 저렇게 해골이 될 텐데 죽도록 일한다는 사명이었습니다.”
나는 이집트, 이스라엘 그리고 아토스등을 돌면서 수도원을 많이 보았습니다. 봉쇄 수도원은 거의 다 그렇습니다. 해골을 보관하였습니다. 수도사들은 선배 수도사들 해골을 진열하여 놓고 늘 보면서 수도하고 있습니다. 매일 봅니다. 늘 봅니다.
“나도 저렇게 될 텐데 시기, 질투, 욕심 세상 모두 내려 놓자.”
이런 의미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긴 다리가 미국 동부에 있는 키웨스트 다리입니다. 30km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그 다리를 지나 끝에 가면 헤밍웨이 집이 나타납니다. 나는 그 집에서 “바다와 노인” 비디오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쓴 소설입니다. 2층에 바다가 훤히 보이는 창가에 그 소설을 쓴 헤밍웨이 책상이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타이프가 지금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해골이 놓여져 있습니다.
헤밍웨이도 늘 해골을 보며 죽는 연습을 하며 살았던 소설가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넓은 땅을 점령하였던 왕은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그도 자기 방에 해골을 하나 놓아 두고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하 하나가 방문을 열고 말했습니다.
“대왕이시여! 대왕님도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이렇게 전해지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알렉산더 대왕은 정말 훌륭한 왕입니다.
죽음에 너무 과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늘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사는 삶은 경건 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2. 버리는 연습
죽는 연습이란 버리는 연습니다. 이 세상에 올 때에 누구나 빈 손으로 옵니다. 그리고 갈 때에도 빈 손으로 갑니다. 다 버리는 훈련은 죽음 훈련입니다. 이 세상에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버리고 갑니다.
그래서 버리는 훈련은 죽는 연습입니다.
수도사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없이 살고 있습니다. 가진 재산이란 옷 한 벌, 딱딱한 침대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공동 재산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죽는 연습입니다.
어느 사람이 매일 버리기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 버리고 이제 난 두 화분만 남았습니다. 책상위에 두고 향내를 맡으려고 남겨두었습니다. 며칠 후 다른 곳에 가서 자게 되었습니다. 밤에 난에 물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돌아 와서 난도 버렸습니다. 그 후부터는 어디를 가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버리는 훈련이 죽은 연습입니다.
나는 산티에고 길을 순례하였습니다. 프랑스 생장디포르트에서 스페인 포르트갈까지 800 km를 걷는 길입니다. 매일 배낭을 꾸리고 떠나야 합니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려는 노력은 필사적이었습니다. 아침에 치약을 칫솔에 짜면서 혼자 중얼거립니다.
“오늘은 이 치약만큼 무게가 줄었구나!”
일기 노트를 꺼내 쓸 데 없는 페이지 전철 노선, 세계 지도, 우리나라 지도가 들어 있는 페이지를 찢어 내면서 흐믓했습니다. 다 걷고 나서 무시아 해변가로 가서 배낭을 던집니다. 지는 석양을 바라보면서“다 걸었다”외치며 불을 태우면서 순례를 끝냅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죽기 직전에 워싱톤 워터리드 병원으로 실려 갔습니다.
그는 빌리 그래험 목사를 만나고 싶어 하였습니다. 병문시간은 30분으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30분 후 나가려는 빌리 그래햄에게 요청하였습니다.
“더 있어 주세요. 목사님! 내가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는 지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죄사함 받을 수 있는 지 알려 주세요. 죽음을 앞둔 내게 다른 것은 다 필요없어요.”
빌리 그래햄 목사나는 신약성경을 펴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천국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기에 우리가 천국가게 된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이제 죽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이것이 죽는 연습입니다.
3. 묘에 가기
축구장에 나갈 축구 선수들은 불철 주야 공차는 연습을 하여야 합니다. 내가 아는 국가 대표 선수는 엄지발가락이 없어졌습니다.
내가 아는 교수님 한 분은 논문을 쓸 때 하도 손가락으로 컴퓨터를 쳐서 지문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죽을 우리가 죽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죽는 연습중에 하나가 묘지에 자주 가 보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원목 목사님들이 죽을 때에는 그렇게 평화로운 얼굴로 하나님 품에 안긴다는 통계입니다. 늘 죽음을 많이 보기 때문에 죽는 연습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번 기 <마지막 때> 쎄미나에 왔었던 순복음 교회 목사님은 목회를 참 잘 하십니다. 그 목사님은 제일 존경하는 목사님이 최 자실 목사님이랍니다. 그는 주일 설교 준비를 토요일에 항상 최 자실 목사님 무덤 앞에 가서 한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이 없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설교 준비를 하면 숙연하여 진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죽는 연습입니다.
4. 영정 사진 걸어 놓기
자기 죽으면 장례식에 걸어 놓을 영정 사진을 미리 찍어 걸어 놓아 두는 것도 죽는 연습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이 규학 목사님 교회에 부흥회에 갔더니 사무실로 나를 부릅니다. 들어가자 말자 내게 사진을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강 목사! 나는 지난 주간에 영정 사진 찍었어.”
그리고 사진을 보여 주는 데 평생 사진찍은 것중에 최고 비싸게 찍었다는 것입니다. 사진 한 장에 100만원 주었다는 데 정말 멋지게 찍었습니다.
“내 장례식에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겠지.”
이렇게 생각할 때마다 죽는 연습이 될 것입니다.
어느 분은 아예 자기 장례식에 보여 달라고 인사말까지 녹화해 두었습니다. 자기 장례식에 오신 손님들에게 인사말을 녹화하여 둡니다.
“제 장례식에 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지금 천국에 와 있습니다. 천국에서 여러분을 환영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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