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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강문호 원로목사)

아둘람 공동체(삼상 22;1-2.2018.10.28)
2018-09-23 09:34:59
강문호
조회수   1496

아둘람 공동체


 


삼상 22;1-2.


 


이스라엘이 골리앗 장수 때문에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민족은 전쟁에 진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 종이 될 위기에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펄펄 뛰며 좋아 하였습니다. 다윗은 17살에 민족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온 세상이 다윗 칭찬뿐이었습니다.


사울은 기분이 상하였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칭찬할 때 그 사람만 칭찬하면 되지 남을 깍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윗은 만만이다.”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사울은 천천이요를 첨가하여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군사 3천명을 데리고 나라를 구한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쫓아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어디에 가나 잡힐 것같아서 가드로 도망갔습니다. 가드왕 아기스에게 갔더니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 보았습니다.


다윗은 자기 생애에 최대 연극을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21;13절을 보면 다윗의 비참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이 모습을 본 가드왕 아기스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치광이로구나. 저런 자를 왜 이리로 데리고 왔느냐? 당장 내 쫓아라.”



그 다음 말이 재미있습니다. 아기스 왕 이야기입니다.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삼상 21;15)



다윗은 미친 사람으로 연극을 하여 그 자리를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곳에서 도망쳤습니다. 아둘람으로 도망갔습니다. 다윗이 아둘람에 갔을 때 그 곳에 새로운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란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모든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의 우두머리가 되었는 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삼상 22;2)


 


나는 아둘람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곳곳에 바위와 굴뿐이었습니다. 숨기 좋은 장소입니다. 피신처입니다. 아둘람의 뜻은 외진 곳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외진 곳으로 가서 숨었습니다.


 


나는 우리 갈보리 교회와 앞으로 내가 들어가서 살 수도원이 아둘람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멧세지를 드립니다.


아둘람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입니까? 특징이 몇 가지 나타나 있습니다.


 


1. 아픈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아둘람에 모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본문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란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모든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다윗이 아둘람으로 가서 숨었습니다. 그 때 다윗에게 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성경은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제일 먼저 기록되어 있는 사람은 다윗의 가족과 형제들입니다. 이유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우선 가족부터 감시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을 찾아 내지 못 하면 3족을 멸한다.” 이렇게 위협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여하간 가족들부터 핍박하여 생명의 위협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음에 다윗에게 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환란을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모든 자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400명이 산속에서 사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환란당한 사람들이 다윗에게 오면서 속으로 말했을 것입니다.


저렇게 환란을 많이 당하였으니 우리 속을 알 줄 것이다.”



빚진 자들이 다윗에게로 오면서 바램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빚지고 어쩔 수 없는 심정을 다윗은 충분히 알아 줄 것이다.”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에게로 오면서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원통함을 충분히 이해하여 줄 것이다.”


 


다윗에게 온 사람중에 대표적으로 한 사람 언급하여 봅니다. 다윗이 이리 저리 도망다닐 때 놉이라는 곳으로 가서 숨었습니다. 그 곳에 성막이 있었고 제사장 아히멜렉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배고프다고 하니까 성막 떡상에 진설하는 떡을 다윗에게 주어 먹였습니다. 최고의 대접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무기가 없이 이리 저리 쫓겨 다니는 것을 보고 칼을 주었습니다. 보통 칼이 아니라 골리앗이 죽을 때 지니고 있었던 칼이었습니다. 그 칼이 성막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사울은 다윗을 도와 주었다는 명목으로 군사를 놉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히멜렉과 그 가족을 몰살시켰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85명도 한꺼번에 죽였습니다. 그 때 유일하게 도망가서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이 아비아달입니다.


아비아달도 다윗이 있는 아둘람으로 와서 합세하였습니다.


 


다윗의 공동체는 이같이 트라우마가 많은, 상처투성이 사람들 400명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보니 이들이 다윗과 똘똘 뭉쳐서 다윗을 왕으로 만드는 데 공헌하고 이스라엘을 강하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울의 공동체는 당시 이스라엘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상류층으로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서는 사라진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사무엘하에 종종 등장하는 말을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리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고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 3;1)


 


나는 우리 교회와 수도원이 아둘람같은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있는 상처 투성이의 사람들이 와서 위로받고 같이 사랑을 나누며 점점 강성하여 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 숨어 있는 공동체


아둘람 공동체는 세상에 떠벌리고 나타난 공동체가 아니라 숨어서 사는 공동체였습니다. 사울의 공동체는 들어난 공동체입니다.


 


해를 보십시오.


수만년 동안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쏟아 내고 있습니다. 태양이 주는 빛과 열이 없으면 지구는 멸망하고 맙니다. 사방으로 발산되는 에너지중에 지구에 오는 에너지는 넓은 칠판에 찍은 한 점에 불과합니다. 태양에서 1초에 나오는 에너지를 지구에만 쏟으면 지구는 800년 사용할 수 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런 에너지로 수 만년 동안 수많은 동물과 사람들, 식물을 기르면서도 한 마디 말이 없습니다.


 


땅에는 70억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속에는 수천 억마리 고기가 살고 있습니다. 그 많은 고기를 먹여 살리면서 바다는 말이 없습니다.


아둘람이라는 말 자체가 외진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외진 곳에 있는 것같지만,


상처받은 사람들만 모인 것같지만,


힘없는 사람들인 것같지만,


눈물 흘리는 사람들만 모인 것같지만,



우주에서 제일 말없이 제일 크게 일하시는 분 한 분을 소개합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온 우주를 관리하시면서 말없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교회와 수도원이 아둘람 공동체처럼 아픈 사람들이 모여서 나중에 창대하여 지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나무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와이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가량 태평양 가운데로 가면 카라우파파라는 곳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나무라고 보여 주었습니다. 3000평 대지를 한 나무가 덮고 있습니다. 그 나무 하나면 3000평 정도 학교를 다 덮을 수 있습니다.


그 나무 연구한 결과를 보았습니다. 뿌리가 이 나무 저 나무와 연결되어서 서로 힘을 버티게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서로 힘을 줄 때 큰 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아둘람 공동체 400명이 서로 서로 연결되어 사랑하여 주고 아픔을 쓰다듬어 주면서 끈끈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우리 수도원이 그런 곳이 되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3. 좋은 지도자가 있는 공동체


좋은 공동체와 안 좋은 공동체의 차이가 분명합니다. 지도자입니다. 다윗의 공동체는 400명이 모두 상처 투성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공동체는 이스라엘 최고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사라진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지도자가 문제입니다.


축구 선수 한 두 명이 잘못 하면 선수를 교체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전체가 안 좋으면 지도자 코치를 바꾸어야 합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몇 명이 잘못 하면 몇 명만 처벌하면 됩니다. 그러나 국가 전체가 흔들릴 때에는 대통령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도자론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100마리 양과 호랑이 한 마리가 지도자인 그룹이 있습니다. 반대로 양이 지도자이고 호랑이가 100마리입니다.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가요? 답은 양 100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지도자인 그룹이 이깁니다.



우리 갈보리 교회와 충주 봉쇄 수도원은 좋은 지도자가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나는 좋은 지도자가 될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 수도원 원장으로 모시고 나는 수석 비서관이 되려고 합니다. 늘 모두를 주님께 물어 보며 그 분이 하라는 대로 할 것입니다.



다윗이 아둘람에 숨었을 때 지은 시가 있습니다.


가드왕 아기스에게 죽을 뻔 하고, 사울에게 죽을 뻔 하고, 아둘람 굴속에 숨었습니다. 상처받은 400명이 몰려 왔습니다. 이 때 시편 34편을 썼습니다. 그런 중에도 시를 쓰는 다윗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시편 34편 옆에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척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34;18)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34;19)


 


두 말씀이 시편 3422절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부모는 자녀가 건강할 때는 내버려 둡니다. 그러나 아프면 머리에 물수건도 대주시고, 죽도 끓여 주고, 전화도 더 걸고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아프면 더 가까이 하십니다.


그리고 통회하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다윗에게 모인 이들은 아파하는 이들입니다. 통회하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하는 이들임을 알고 이 시편을 썼습니다. 아둘람 굴에서 썼다는 말은 없지만 미친 체하다가 쫓겨서 썼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때가 바로 아둘람 시절입니다.


아파하며 회개하는 이들이 모인 공동체는 하나님이 가까이 하는 공동체입니다.


400명 모인 사람들은 아픔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환란을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모든 자


 


그런데 사실은 가장 아픔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다윗입니다. 지금 언제 죽을 지 모릅니다. 아직도 환란이 끝나지 않았고 원통함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잘 못 한 것이 무엇입니까? 나라 살린 것밖에 없습니다. 골리앗 죽인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환란을 당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다윗이 제일 큰 환란과 원통함을 당하면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지도자가 된 데에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는 환란을 당할 때에 치료법, 원통할 때, 억울하고 분할 때 이기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34;18)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34;19)


 


두 단어입니다.


지금은 환란을 당하여 마음이 상해 있지만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도다.>


지금은 고난이 많지만 하나님이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


 


구원하시는 도다.


건지시는 도다,


 


지도자는 똑같이 고난을 당하여도 흔들리면 안 됩니다.


 


나는 오늘 놀라운 공동체 하나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세계에서 읽고나서 버리지 않는 잡지 중에 1호로 뽑힌 잡지가 National Geography입니다. 나도 그 잡지는 버리지 않습니다. 얼마전에 특집이 새클턴 탐험가 이야기입니다. 감동스러워서 자세히 읽었습니다.


하나가 되지 아니하였으면 다 죽었을 뻔 한 공동체가 다 살아난 이야기입니다.


여러 해 전에 서점가를 이 책 <위대한 항해>가 독점하였습니다.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리더십의 최고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지도자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1914년 남극대륙의 횡단을 꿈꾸던 이들 27명이 모였습니다. 대장은 어네스트 섀클턴(Ernest Shacklton, 1874-1922)입니다.


이들은 남극을 항해중에 전혀 예상치 못 하였던 조난을 당하였습니다.


얼음이 깨져서 부빙위에서 견디어야 했습니다. 난파된 배는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며 아끼며 하나가 되어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497일을 떠내려갔습니다.


새클턴 탐험가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2000 km 거리를 2년 동안 빠져 나오는 이야기는 처절하였습니다. 영하 80도속에서 한 명도 희생시키지 않고 걸어서 나오는 대원들 이야기는 대단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남극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새클턴은 구조 요청을 위하여 생명을 걸고 몇 명을 선정하여 떠납니다. 대원들 중에서도 다루기가 힘들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들과 섬에 남겨진 사람들과도 갈등을 일으킬 만한 사람을 선발하여 떠난다. 그것은 섬에 남아있는 대원들까지 보호하려는 배려도 있었습니다.


한 달 만에 그가 이끈 구조대가 사우스 조지아 섬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조난사실을 알립니다. 드디어 구조되었습니다.


그 때 새클턴은 10가지 지침을 내렸습니다.


 


1.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말아라.


2. 가시적인 행동으로 솔선 수범하라.


3. 자기 확신을 가지라.


4. 자신을 돌보라.


5. 우리는 하나라고 하는 팀 웍을 가지라.


6. 이질감을 최소화하라.


7. 불필요한 힘겨루기를 피하라.


8. 함께 웃을 수 있는 일을 찾아라.


9. 큰 모험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라.


10. 절대 포기하지 말라.


새클턴은 외쳤습니다.


 


그대는 높이들 깃발이 있는가?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신조가 있는가?


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는가?


 


190919, 새클턴은 당시 남극 탐험 기록상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최남단인 남위 8823분에 도착하였습니다.


역사상 최 남단 기록을 갱신한 새클턴은 그 자리에 알렉산드리아 여왕이 하사한 깃발을 꽂았습니다.


이 곳은 남극점에서 155km 떨어진 곳입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은 식량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 밤 일기입니다.


 


비록 남극점 정복은 실패했지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기존에 세웠던 사람들의 최극단 기록에서 남극은 580km나 초과했고, 북극은 120km를 초과했다. 이제 우리가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아멘.”


 


그는 27명의 대원과 함께 범선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돌아 오는 길에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영하 30도에서 80도까지 오르 내리는 남극에서 빙벽에 갇혀 634일동안 물개를 잡아 먹으며 견딘 그들은 신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지옥같은 생활속에서도 행복하였었다고 고백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섀클턴을 비롯한 대원들은 남극 탐험길에 일기를 남겼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혹한 속에서도 그들이 남긴 일기 한 토막이 알려져 있습니다.


새클턴은 은밀히 자신의 아침 식사용 비스킷을 내게 내밀며 먹으라고 강요했다. 그리고 내가 비스킷을 받으면 그는 저녁에도 내게 비스킷을 줄 것이다. 나는 도대체 이 세상 어느 누가 이처럼 철저하게 관용과 동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죽어도 섀클턴의 그러한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수천 파운드의 돈으로도 결코 그 한 개의 비스킷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지도자가 좋은 공동체는 모두 살아 납니다. 아둘람 공동체가 그런 공동체였습니다.


 


앞에 홍해가 막혀 있습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쳐들어 옵니다. 다 당황하여도 모세만은 요동치 않았습니다. 한 명 때문에 모두가 살았습니다.


 


몇 년 전 우리 교회 강대상에 일년 동안 걸어 놓았던 그림을 기억하시나요


참새 구이 장사들이 참새가 많이 모이는 곳에 먹이를 땅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그물을 쳐 놓았습니다. 멀리에서 끈을 연결시키고 보고 있던 사람이 수 천 마리 참새 떼가 그물 밑에서 맛있는 먹이를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재 빨리 끈을 당겼습니다. 수 천마리 참새들이 그물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모두 참새 구이감이 되었습니다. 이 때 참새 한 마리가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살 방법이 있다. 다같이 그물에 매달려 하늘로 오르자. 다같이 하면 된다. 그리고 나무위에 걸쳐 놓고 밑으로 빠져 나오자.”


모두가 그물을 등에 졌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수 천마리가 한꺼번에 그렇게 하니까 그물이 들렸습니다. 나무까지 날라가서 걸치고 밑으로 모두 빠져 나왔습니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모두 살았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하면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참새 아둘람 공동체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 우리 수도원이 아둘람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하십시다.


상처받은 이들이 모이는 공동체.


날이 갈 수록 좋아 지는 공동체


숨어 있는 공동체


좋은 지도자 예수님을 모신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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